나는 안될 줄 알았지만, 그냥 해봤다. 결과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사람들은 나를 보며 이런 말을 자주 한다.
"말 참 잘하시네요", "말빨이 세네요", "원래 그런 거 잘하잖아요." 누군가는 "운이 좋았네"라고 말하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스타트업 대표는 내가 질문하는 걸 보고 이런 말을 했다. "아나운서시잖아요? 그냥 겉핥기 인터뷰 아냐?"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일수록, 나의 말하기 능력이나 결과를 보고 그걸 '타고난 재능'이나 '운'으로 단정 지으려 한다. 그런데 말이다. 그건 전혀 아니다. 나는 누구보다도 많이 실패했고, 누구보다도 많이 준비했고, 누구보다도 오래 훈련했다. 주장이 강한 게 아니라, 훈련을 오래 했을 뿐이다. 나는 완벽하려다 멈추는 대신, 불완전해도 계속 만들고 실행했다. 재능? 모르겠다. 다만 나는 오늘도 남들이 두 시간 공부할 때 네 시간을 쓰고, 그걸 글과 강의로 쌓아가고 있다. 그것이 지금의 나를 만든 시스템이다.
사람들은 내가 뭔가를 잘 해내면 이렇게 말하곤 한다.
"원래 말 잘하잖아."
"원래 똑 부러지는 스타일이잖아."
"글도 잘 쓰고, 강의도 잘 하고, 네가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가능한 거 아냐?"
웃기지 마라.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불안함에 등 떠밀려 앉은 자리에서 엉덩이로 버틴 시간들이 있었을 뿐이다.
2019년. 처음 자취를 시작했을 때, 불안했다.
자존감도 떨어졌고, 스스로가 초라해 보였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책을 하루에 한 권씩 읽자.'
그냥 그거 하나였다. 전략도, 시스템도 없었다.
그저 불안감을 밀어내기 위해 책을 붙잡았고, 집중력이 흐트러질 땐 오디오북을 켰다.
그래서 결국, 매일 한 권씩 100일을 채웠다.
그건 단순한 독서가 아니었다. 내 인생 첫 번째 ‘시스템적 훈련’이었다.
그 이후 나는 변했다.
이제는 책을 단순히 소비하지 않는다.
읽은 내용을 ChatGPT와 토론하고, 글로 풀고, 내 경험과 연결한다.
그렇게 ‘이해하고-적용하고-표현하는’ 구조가 생겼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대화 자체도 그 시스템의 일부다.
읽고 → 생각하고 → 표현하고 → 피드백받는 루틴.
누구보다 강력한 학습 시스템이자, 콘텐츠 생산 루틴이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나는 블로그를 9년째 쓰고 있다.
2020년부터는 책도 쓰기 시작했다.
물론, 쉽지 않다.
블로그는 SEO 최적화라는 장벽이 있고, 책은 유명세 없이는 팔리기 어렵다.
그래서 난 멈추지 않고 실험한다.
강의를 듣고, GPT와 실험하고, 콘텐츠 전략을 개선한다.
왜 안됐는지 분석하고, 어떻게 하면 다음은 더 잘될지 고민한다.
책 한 권 안 팔렸다고, 블로그에 유입 없다고 멈추지 않았다.
그게 내가 말하는 ‘시스템’이다.
결과가 아니라, 시스템이 만든 일상적인 훈련과 루틴.
그래서 말인데.
이건 누구나 할 수 있다.
요즘 같은 시대엔 친구한테 말하듯 쓰기만 해도, GPT가 형식 다 다듬어준다.
내가 개떡같이 말해도, GPT가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그래서 난 말한다.
‘글쓰기 재능’은 이제 핑계일 뿐이다.
한글로 말하고, 생각할 수 있다면, 누구든 시작할 수 있다.
재능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그리고 나는, 그 시스템을 100일 동안 버틴 사람일 뿐이다.
나한텐 낯선 세계였다.
소설은커녕, 나는 자기계발서와 실행서를 즐겨 읽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강의 현장에서 한 웹소설 작가가 말했다. "당신처럼 ChatGPT를 쓸 줄 아는 사람이라면, 소설도 충분히 가능해요. 도전해보세요." 그 말이 자꾸 마음에 남았다. 그래, 나도 한번 해보자. 그렇게 나는 팔자에 없는 웹소설에 발을 들였다.
처음엔 답답했다. 아무리 GPT와 대화를 해도, 내가 원하는 게 안 나왔다. 당연했다. 나는 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설정도 흐름도, 업계 용어도 몰랐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내가 내 생각을 명확히 전달하지 못하면 GPT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포기하고 싶었다. 진짜로.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그런데, 또 그게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이왕 시작했으면 끝까지 해보자. 단, 잘 아는 사람에게 제대로 배워보자.’
그래서 실제 웹소설 작가를 찾아갔다.
“저는 GPT를 다룰 줄 압니다. 대신 소설을 모르니 한 수 가르쳐주십시오.”
거래가 성사됐다.
우리는 브레인스토밍을 함께 했고, 나는 하나하나 배워갔다.
플롯은 어떻게 짜야 하는지, 캐릭터의 말투는 어떻게 잡는지, 장르마다 어떤 클리셰가 통하는지.
그제야 GPT에게 제대로 질문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나는 웹소설 공모전에 참가했고, 완판까지 이뤄냈다.
그 과정을 통해 나는 한 가지 확신을 얻었다.
모를 땐 전문가에게 물어라.
세상이 좋아져서 AI가 많은 걸 도와준다지만, 결국 그걸 조정하는 건 사람이다.
내가 사업계획서나 자기소개서를 잘 쓰는 이유는, ChatGPT가 똑똑해서가 아니다.
내가 정확히 ‘어떤 질문’을 해야 원하는 결과가 나오는지 알기 때문이다.
GPT는 조연일 뿐이고, 나는 그 무대의 주연이다.
그 도전 과정에서 주변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쓸데없는 짓 한다.”
“대단하다, 그런 걸 어떻게 해?”
그런 말들?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왜냐면, 그들이 내 인생을 살아주는 건 아니니까.
내가 실패하든 성공하든, 내 몫은 내가 짊어지는 거다.
결과적으로 웹소설은 내게 신의 한 수였다.
그때 난 GPT를 들들 볶았다.
어떻게 물어야 더 나은 결과가 나오는지, 어떤 흐름이 먹히는지 온몸으로 부딪혔다.
그 과정이 지금 강의할 때, ChatGPT 프롬프트를 설계하는 내 기술력이 되었다.
웹소설을 쓰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것이다.
'몰입'과 '실행'이 만든 축적. 그게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나는 지금도 계속 글을 쓴다. 블로그는 9년째 운영 중이고, 책도 2년에 한 권씩은 꾸준히 써왔다. 그렇게 쌓인 콘텐츠들이 강의로 이어졌다. 지금은 한 달에 많게는 1000만 원까지 강의 수익이 들어온다. 책 인세도 쏠쏠하다. 물론 나는 아직 "성공했다"는 말을 조심스러워하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완성의 힘’을 아는 사람은 다르게 산다.
예전에는 뭐든 완벽하게 하려다 멈췄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완벽하지 않아도 일단 완성하면 인생의 질이 달라진다.
완성은 곧 자존감이다.
완성은 여유를 만든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하나, 둘 늘어날수록 삶이 단단해지는 걸 느낀다.
지금 나는 똥손인데도 미술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게 말이 되냐고?
ChatGPT와 함께한 상상 훈련, 창의력 트레이닝이 없었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일이다.
예전엔 블로그 한 편 쓰는 데 몇 시간이 걸렸지만,
지금은 생각을 구조화하고 강의 흐름을 넣는 데도 한결 수월하다.
글의 퀄리티는 높아졌고, 시간은 단축됐다.
GPT 덕분이다. 아니, GPT를 어떻게 쓸지 내가 알아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또 다른 도전을 하고 있다.
우리 고양이들로 영상 콘텐츠를 제작 중이다.
GPT의 도움은 거의 없이, 상상력과 창의력만으로 기획하고 편집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다.
그런데 지금은 "나도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도전이 두렵지 않다.
실패도 상관없다.
왜냐면 나는 알고 있으니까.
‘지금 하는 이 도전이, 언젠가 나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될 거라는 걸.’
그게 지금의 나를 만든 시스템이다.
완벽보다 완성.
망설임보다 실행.
그렇게 나는 쌓였다. 아주 단단하게.
사람들은 내 얘기를 들으면 자주 이렇게 말한다.
“너니까 한 거지. 나는 못 해.”
그 말, 참 익숙하다.
그리고 한편으론 슬프다.
왜냐하면 나는 ‘나’여서 된 게 아니라,
안 할 이유가 없어서 했던 사람일 뿐이거든.
대한민국에서 안 되는 게 어딨냐?
안 해서 안 되는 거다.
첨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말해봐라. 한 번이라도 제대로 해보고 “나는 못하겠어요”라고 말한 적 있나?
아니다.
해보지 않고 판단해버리는 거다.
해봐야 잘하는지 못하는지를 알 수 있다.
이건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다.
나?
나는 강사 경력이 전무했던 시절,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도 나를 불러주지 않던 그때,
그냥 프로필을 프린트해서 서류봉투에 넣었다.
눈에 보이는 회사 100군데를 찾아갔고,
인사과에 들이밀었다.
그 회사가 교육이 필요한지도 모르고,
강사를 쓸 수 있는 여건인지도 모르고,
그냥 갔다.
“강사 필요하시면 불러주세요.”
지금 생각하면 좀 웃기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으면 나는 아직도 “언젠간”만 외쳤을 거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저도 하고 싶은데요,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좋다.
그럼 그냥 ChatGPT한테 물어봐라.
그 한 문장만 던져도,
“하고 싶은 게 뭔가요?”, “어떤 환경에 있나요?”, “하루에 쓸 수 있는 시간은요?”
GPT가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이 너의 사고를 확장시킨다.
그게 바로 시작이다.
자기 사고가 트이는 순간, 인생도 움직이기 시작한다.
시스템?
거창한 거 없다.
나는 지금도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내가 생각하는 시스템은 이렇다.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이 생긴다 →
그걸 하려면 뭐가 필요한지 GPT랑 상의한다 →
GPT가 단계별로 나눠준다 →
그걸 하루에 하나씩 움직인다.
끝이다.
그리고 이건 단순히 한 번 하고 끝나는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나는 지금도 블로그를 쓴다.
그 블로그 글이 강의로 연결된다.
강의가 잡히면 강의안을 만든다.
강의안을 만들면서 다시 블로그 글로 정리한다.
블로그를 쓰면서 말할 내용을 시뮬레이션하게 된다.
그게 곧 연습이고, 그 연습이 강의에서 바로 쓰인다.
강의가 끝나면 후기를 블로그에 쓴다.
그리고 그 후기가 또 다른 강의로 이어진다.
이게 나만의 순환 시스템이다.
콘텐츠가 쌓이고, 경험이 반복되고, 결국 하나의 전자책이 된다.
이건 거창한 게 아니다.
그저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안 하니까 안 되는 거’라는 말,
나는 그걸 이렇게 증명하고 있다.
내가 지난 몇 년간 반복해온 건 단 하나다.
반복 → 시행착오 → 피드백 → 교정 또는 수정 → 그리고 다시 도전.
이 사이클이 몸에 배면, 인생의 흐름이 바뀐다.
혼란스럽던 일상이 질서를 갖고,
‘하고 싶다’는 생각이 ‘하고 있다’는 상태로 옮겨간다.
이건 이론이 아니라,
내가 매일 증명하고 있는 시스템이다.
그래서 과거의 나에게 한 문장만 해줄 수 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거다.
“무식이 용감하다.”
그 무식함이 나를 움직였고,
그 용감함이 내 방향을 정했다.
내가 이 글을 읽을 당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단순하다.
대한민국에서 안 되는 건 없다.
안 되는 게 아니다.
그냥 안 해본 것이다.
해보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판단할 수 없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첫 번째 ‘해봄’이 시작될 수 있는 순간이다.
나는 지금도 이 시스템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왜냐고?
지금의 나는, 과거보다 훨씬 만족스럽다.
내가 공부한 만큼 성장하고,
내가 만든 콘텐츠로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며,
내가 결정한 방향으로 인생이 흘러간다.
직업 만족도도, 인생의 질도,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마지막으로,
만약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나도 이렇게 살고 싶은데, 뭘 해야 하지?”라고 고민하고 있다면,
이 한 문장을 기억해라.
“안되면 어떡하지?” 하지 말고, 그냥 “해.”
그게 전부다.
그리고 그것만이,
‘원하는 삶’을 현실로 옮기는 유일한 방법이다.